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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4. 14世 〉38. <부정공>금리공휘유진유사(錦里公諱有進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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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부정공>미산재중건기(嵋山齋重建記)
嵋山齋重建記 峨嵋山於昇州一邑最稱美其爲山也磅礴而蜿蟺肯後層巒疊崖遠者如萬馬來奔後先相値近者如雁群飛回參差橫落前臨長江一帶演漾平曼澄若練素淨若琉璃至今大小第宅櫛比相望於其間曰鰲山里其山形如鰲之項故稱之云耳其下有泉甘洌而清可飲萬人亦稱鰲泉即玉川趙氏世居之庄也宜其魁奇材德傑特之士挺生於其中粤在宣仁之際守愚堂趙公元律其眞山水鍾靈而生歟公端廟節臣節愍公崇文后積蔭蓄慶世食舊德尚今未艾也公早有志於學遂通天人之道性又至孝年甫十歲遭内艱能盡禮制終身孺慕益探頤義理之源鉤玄性命之奧又工於文詞甞少試任宣傳官義禁府都事而不卑小官尤勤厥職然公有遊心天外壁立千仞之志棄官浩然南歸故里高蹈遠覽不役役於功利擺脱塵臼逍遙自適以卒葬於峨嵋山中嶝後孫築丙舍因其山名額以嵋山齋每歲薦裸以爲致誠齊宿之所星霜浸久材瓦未免朽泐後孫之齎恨深矣廼在乙巳謀所以堂構增舊制而益新公在天之靈亦將謂曰余有后弗棄基也董其役者淵冲順一而諸宗亦多賢勞也淵權走五舍要余以記自顧魯拙不敢當而第有一言可以奉昴者惟諸彦念祖修德以忠孝爲基礎文學爲覆蓋誠敬爲棟樑則將見斯齋其永世不朽矣因書遂爲之記 光復後乙丑至月 日 河陰 奉奇鍾 撰 미산재중건기(嵋山齋重建記) 아미산(峨嵋山)은 昇州의 가장 아름다운 山으로 그 형세가 우둘투둘 넓게 덮혀 어정거리고 뒤틀어졌으며, 등 뒤에 겹으로 連해진 산봉우리와 거듭된 낭떠러지가 멀리는 萬馬가 뛰어오르는 것같이 後先하여 서로 만난 것 같고 가깝게는 기러기떼가 돌아 날며, 연이어 가로 떨어진 것 같으며, 앞에 長江一帶는 긴 물줄기가 平曼하게 출렁거려 마전한 비단같이 맑은 유리(琉璃)같이 조촐하다. 이제 그 사이에 즐비하게 서로 바라보는 크고 작은 집이 오산마을인데, 그 형상이 자라목 같으므로 호칭하였다. 하고 그 아래 萬人이 마실 만한 감미롭고, 맑은 우물이 있는데 이름은 오천(鰲泉)이요, 玉川趙氏가 世居한 땅이다. 마땅히 人物이 雄偉하고 材德이 겸비한 선비가 정생(挺生)할 것인데, 곰곰이 생각하니 옛날 선인(宣祖仁祖)시대 守愚堂趙公元律이 그 山水 정기를 타고 난 人物이 아니였든가. 공은 단묘절신(端廟節臣) 節愍公崇文의 后孫으로 쌓으신 음덕과 기룬 여경을 대로 이어받아 지금까지 진진하다. 공이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마침내 天人의 도리를 관통하고 天性이 또 至孝하여 나이 겨우 十歲에 어머니상을 만나 능히 예제를 다하고 종신토록 유모하며, 더욱 의리의 근원을 탐구하고, 성명(性命)의 오묘함을 터득하며 또 문사(文詞)에 능하여 일찍 소시(少試)로 宣傳官義禁府都事를 제수하니, 미관이라 생각 않고 충직하게 근무하다가 세사에 초연하고 벽립 千인의 뜻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높이 들고 멀리 보며 功利를 탐치 않고 塵俗을 파탈하며, 林泉에서 노닐며 종신하시니 峨嵋山中嶝에 장례를 모셨다. 後孫이 제각을 지어 그 산명을 따라 嵋山齋라. 편액(扁額)하고 매년 歲一祭를 천향(薦享)하며, 치성하고 재숙할 처소로 쓰는데, 해가 거듭됨에 따라 재목이 후패하여 무너지니, 後孫의 한탄한바 컸었다. 지난 乙巳(一九0五)년에 중건하기로 합의하고, 옛날 제도보다 크게 더욱 새롭게 하니, 공의 정령이 오르고 내리며, 내後孫이 터를 버리지 않았다 하실 것이다. 그 工事를 감독한 사람은 연충(淵冲)과 順一이요. 모든 종족의 현로(賢勞)가 많았다. 연권(淵權)이가 五舍(百五十里)를 달려와서 나보고 재기를 써 달라 요청하니, 스스로 돌아보건대, 우졸(愚拙)한 자가 감히 감당할 수 없으나 이에 한말 권면(勸勉)할 말이었다. 오직 제군은 先祖가 닦은 德行을 행각하여, 忠孝로써 근본을 삼고 文學으로 덮개를 하며 誠敬으로 기둥을 삼으면, 장차 이 제각이 永世토록 썩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기록한다. 乙丑至月 日 河陰 奉奇鍾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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